어렸을 때 어디선가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이 눈을 감고 앞으로 걸으면 큰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주 아주 넓고 평평하고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운동장에서 눈을 가리고 걷는다고 상상해보자. 처음엔 무서워서 잘 걷지 못하겠지만 곧 익숙해져서 똑바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똑바로 걷는다고 생각하고 걸어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걷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니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그 글에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사람은 양쪽 다리의 길이가 완전히 같지는 않기 때문에, 양쪽 다리를 똑같이 움직이면 한 쪽으로 기울어져 걷게 된다. 사람이 똑바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주변 상황을 끊임없이 눈으로 확인하고 방향을 조정하면서 걷기 때문이다.
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어떤 일을 겪고 나서 다시 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매우 불합리한 어떤 일을 지적한 사람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불합리하다는 것이 매우 당연하지만,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문제의 세부 사항은 상당히 복잡해서 그 세부 사항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사람은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에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론화하였다. 왜냐하면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는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이지경까지 오게 된 책임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돌렸는데 이 과정에서 몇몇 전문가(!)들이 크게 반발하게 되었다. 그 전문가들은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은 감정적인 대응이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행동이 비난받았다고는 하지만 해당 분야에서 십수년씩 일해 온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논쟁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을 비난했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이공계 사람들은 평균에 비해 훨씬 논리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상당히 편협한 생각이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충분히 그런 경향이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사람들조차 쉽게 오류에 빠지는 것을 보고 나니, 내 스스로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처음에 언급한 이야기에서처럼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수정하며 걷지 않는다면 결국은 제자리를 빙빙 돌게 되는 것이 사람의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도 정확히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자신이 정확한 논리를 이용해 올바르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주의하지 않는다면, 결국 편견과 아집과 오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