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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

7월 19th, 2009

간만에 예비군 훈련 갔더니 아뿔사 그 지루한 시간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핸드폰에 시간 때우기용 만화나 판타지 소설을 담아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메모리 카드를 뒤져보니 아주 옛날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소설이 한 편 있었다. 바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다. 유명한 소설이라 담아둔 것 같은데 전혀 들춰보지 않고 있다가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 되니 그거라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는지 처음에 무척 길게 나오는 작가 소개 글이 너무 지겨웠다. 겨우 참아가며 읽어가니 한참 뒤에 실제 소설이 1인칭 시점으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미리니름 있음-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면 남자 주인공 제로옴이 사촌누나 알리싸를 사랑하는 내용인데, 서로 사랑하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다. 현재의 상식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친족관계 때문에 그럴 것 같지만, 소설에서는 친족관계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알리싸가 심하게 기독교에 심취하여 청교도스러운 (즉, 과도하게 도덕을 강조하고 쾌락을 배척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알리싸는 실제로 그 누구보다 제로옴을 사랑하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을 너무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며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정해버리게 된다. 그래서 두 양립 불가능한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결국 몸도 상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안티기독교를 주장하려는 걸 제쳐놓고 보면, 두 사람 사이의 안타까운 사랑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텐데, 약간 억지스러운 설정에 눈을 감으면 사랑의 묘사는 나름 훌륭한 것 같다. 알리싸가 제로옴과 하느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결과적으로 (심하게 말하면) 제로옴을 갖고 논 게 됐는데 그게 참 어이없으면서도 애절한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나중에 곱씹어보면 알리싸는 애초에 그냥 수녀가 되던가 해서 제로옴을 단념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줄거면서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게 좀 억지스럽긴 했다. 사실 앞에서 제쳐두었던 안티기독교도 소설의 큰 내용을 이루고 있긴 하다. 주인공들의 대화가 상당히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신도 적당히 믿어라’ 인 듯 하다.

극도로 지루한 환경에 의해 거의 반 강제적으로 읽게 된 소설이지만 그래도 한 번 잡고 읽으니 별로 길지도 않아서 끝까지 다 읽을만한 흥미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좀 더 치열한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으면 차라리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