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r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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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정도 끌어온 Diana Wynne Jones의 판타지 소설 `Castle in the Air‘(이하 CitA)를 이제서야 다 읽었다. 먼젓번에 읽었던 `Howl’s Moving Castle‘(이하 HMC)이 워낙 재밌고 생각보다 술술 읽혀져서 그 후속작인 CitA를 주저치 않고 샀는데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처음에 주인공 이름이 압둘라이고 배경이 아랍쪽 나라 비슷한 곳에서 시작하길래, HMC와 그냥 느낌만 비슷한 판타지라고 생각했던 생각은 글 후반부에 가서 크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HMC에서의 반전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의 깜찍한 반전 역시 같은 작가의 후속작임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다. 엉뚱한 꿈을 꾸고 허둥지둥하지만 나름대로 용감하고 친절한 압둘라와 세상 물정을 잘 모르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똑똑하고 사려깊은 Flower-in-the-Night는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리고 소피, 하울과 캘시퍼도 이젠 친숙해서 친구같다는 느낌까지 들어, 이야기가 끝난 게 매우 아쉽다. 허황되지만 코믹하고 순수한 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는 내용이지만 나도 간만에 무척 즐거운 꿈을 꾼 것 같다. :)
책을 읽은 기간동안 내게 준 행복감을 정량적으로 따진다면 CitA에게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상 HMC의 배경이 없이 CitA가 존재하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에 재미를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은 두 작품 모두 읽으라는 뜻.
단점이라면 너무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서 조금 읽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대부분 그냥 지나치거나 적당히 유추해 읽어도 이야기 이해에 큰 문제 없는 단어들이지만, 그래도 내가 어린이용 소설을 읽으면서 쩔쩔매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
이 글을 쓰면서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책 `House of Many Ways‘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2008년에 나와서 출간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아직 상당히 따끈따끈한 책이다. 근데 그 따끈함에 걸맞게 다른 책들에 비해 가격도 두 배다. HMC가 1986년, CitA가 1990년에 나왔는데 그 후속편이 18년만에 나오다니. 허허. 아무래도 HMC의 애니메이션이 나온 뒤 팬들의 독촉이 심해지고 (아마 본인의 손자,손녀들이 그 장본인일 가능성도 크다) 예전에 적당히 구상해 뒀던 걸 꺼내서 써낸 게 아닌가 싶다(물론 순전히 나의 상상이다). 사연이 어찌 됐든 독자로서는 무척 즐거운 일임에 틀림 없다. 어쨌거나 책 제목만 보면 다시 하울과 그 일당이 나올 것 같은데 상당히 궁금하다. 아무래도 어린이날 선물로 내게 사줘야겠다. :)
4월 30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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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맥스를 사용하다 보면 수많은 버퍼를 열게 된다. 버퍼를 열 때 현재 버퍼 위치에 새 버퍼를 열 때도 있고 다른 위치에 버퍼를 열 때도 있다. 다른 위치에 버퍼를 열 때, 원래 그 위치에 있던 버퍼는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종종 어떤 버퍼는 다른 버퍼에 의해 가려지지 않고 화면에 계속 표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레퍼런스 버퍼나 REPL 혹은 인터프리터 버퍼 등은 프로그램을 짜면서 계속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버퍼에 가려지면 매우 귀찮다. 이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래 링크에 나와있는 sticky buffer mode이다.
Re: Lock buffer to window
-
(define-minor-mode sticky-buffer-mode
-
"Make the current window always display this buffer."
-
nil " sticky" nil
-
(set-window-dedicated-p (selected-window) sticky-buffer-mode))
이 코드를 .emacs에 넣고 고정시키기를 원하는 버퍼에서 M-x sticky-buffer-mode를 입력하면 해당 버퍼가 붙박이 버퍼가 된다.
4월 23rd,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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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블루투스 스테레오 헤드셋을 하나 장만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pda폰으로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는데 여태껏 번들로 딸려온 유선 이어폰을 이용하여 들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에서 음악을 들을 때는 편리함을 떠나 음질이 너무나 좋지 않아서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는데 1년 쯤 전에 저렴하게 산 pda폰은 상당히 음질이 좋고 pda로써의 편리함까지 갖추어 아주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폰을 항상 핸드폰에 연결해 두기에는 선이 너무 거추장스러워서 음악을 들을 때만 끼웠다가 빼서 따로 보관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했다. 이 일을 반복 하다보니 너무나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은 무선 세상에 계속 선을 꼽았다 뺐다 하다니… 내 pda폰은 블루투스 모듈도 들어있지만 전혀 사용하지 않다가 이 기회에 한 번 제대로 사용해 보자 하는 생각으로 블루투스 스테레오 헤드셋을 질렀다.
여러 가지 종류의 헤드셋을 비교해 보고서 내가 결정 한 것은 BLUETREK ST1이었다. 내가 이 것을 선택한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가격과 모양이다. 첫째로 최저 가격이 약 35000원인데 블루투스 헤드셋의 가격대를 봤을 때 비교적 저렴했다. 블루투스 기기를 처음 써보는 나로서는, 처음부터 비싼 기기를 샀다가 혹시 내게 잘 맞지 않아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저렴한 것을 사는 게 중요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기기의 모양이다. 애초에 거추장스러운 선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무선 기기를 장만하는 건데, 어떤 헤드셋은 mp3 플레이어처럼 생기고 이어폰을 꽂게 되어 있어서 무선 기기의 장점을 반감시키는 모양이 있었다. 그 것들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겠지만 내 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ST1은 백폰 스타일의 단일한 몸체에 모든 것이 들어있어서, 가방 안에서 거추장스럽게 다른 것들과 섞이거나 꼬일 염려가 없다. 이상하게도 이런 스타일의 헤드셋의 종류가 상당히 적어서 선택의 폭이 크게 줄어들었고, 앞서 언급한 가격 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ST1 하나였으므로 결국 이것을 고르게 되었다.
몇 달간 사용해본 결과를 한 마디로 말하면, 상당히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페어링이니 뭐니 해서 익숙치 않아 계속 버벅거렸는데 지금은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사용하다 보니 전에는 생각치 못했던 장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동작 시간이다. 무선 기기의 태생적 한계로써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는데, 당연히 한 번 충전해서 오래 쓰면 쓸수록 좋은 것이다. ST1의 동작 시간은 생각보다 상당히 길어서 내 생활 패턴에 잘 맞았다. 출퇴근 길에 사용하고 있어서 하루에 평균 한 시간 정도 사용하는데 보통 일주일을 넘게 사용하는 것 같다. 또한 전화통화를 조금 오래 할 때 전화기를 귀에 대고 얘기하는 것은 팔도 아프고 전자파 걱정도 생기는데 무선 헤드셋을 사용함으로써 그런 불편함이 많이 사라졌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생각치 못했던 불편한 점도 꽤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특유의 백폰 스타일의 모양에서 생기는 문제로써, 목 뒤쪽에 튀어나와있는 부분이다.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목 뒷 부분의 옷깃이 좀 길거나 하면 마찰이 생기고 기기가 조금씩 밀려서 착용감이 좋지 못하다. 또한 의자에 앉아서 뒤로 몸을 눕히면 등받이에 닿아서 사용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튀어나온 부분이 목에 수직으로 서게 되어서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데 그 부분을 약간 눞혀서 목 피부에 수평이 되도록 설계했다면 이러한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음질에 관한 것이다. 블루투스 음질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다른 글 등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조용한 곳에서는 잘 느낄 수 있는 화이트노이즈가 있다. 특히 기기의 볼륨을 키우면 상당히 거슬리는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본체(핸드폰)의 음량을 최대로 하고 기기의 음량을 최소로 해야 한다. 하지만 조금 완화가 된다고는 해도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하다. 세 번째 문제는 블루투스 버전이 낮아서 생기는 문제인데, 멀티페어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러 기기(혹은 컴퓨터 및 노트북)에서 번갈아가며 사용하기 위해서는 매번 페어링을 해야 한다. 이는 매우 번거로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4월 11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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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디선가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이 눈을 감고 앞으로 걸으면 큰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주 아주 넓고 평평하고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운동장에서 눈을 가리고 걷는다고 상상해보자. 처음엔 무서워서 잘 걷지 못하겠지만 곧 익숙해져서 똑바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똑바로 걷는다고 생각하고 걸어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걷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니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그 글에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사람은 양쪽 다리의 길이가 완전히 같지는 않기 때문에, 양쪽 다리를 똑같이 움직이면 한 쪽으로 기울어져 걷게 된다. 사람이 똑바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주변 상황을 끊임없이 눈으로 확인하고 방향을 조정하면서 걷기 때문이다.
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어떤 일을 겪고 나서 다시 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매우 불합리한 어떤 일을 지적한 사람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불합리하다는 것이 매우 당연하지만,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문제의 세부 사항은 상당히 복잡해서 그 세부 사항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사람은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에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론화하였다. 왜냐하면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는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이지경까지 오게 된 책임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돌렸는데 이 과정에서 몇몇 전문가(!)들이 크게 반발하게 되었다. 그 전문가들은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은 감정적인 대응이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행동이 비난받았다고는 하지만 해당 분야에서 십수년씩 일해 온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논쟁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을 비난했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이공계 사람들은 평균에 비해 훨씬 논리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상당히 편협한 생각이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충분히 그런 경향이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사람들조차 쉽게 오류에 빠지는 것을 보고 나니, 내 스스로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처음에 언급한 이야기에서처럼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수정하며 걷지 않는다면 결국은 제자리를 빙빙 돌게 되는 것이 사람의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도 정확히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자신이 정확한 논리를 이용해 올바르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주의하지 않는다면, 결국 편견과 아집과 오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4월 11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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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 문장 중 어떤 것이 맞을까?
나는 엠비(임영박)를 싫어한다.
나는 엠비(임영박)을 싫어한다.
문장에 괄호가 있는 경우 괄호 뒤의 조사나 접속사는 괄호 앞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괄호 안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문제다. 그동안 혼자만의 생각으로 당연히 괄호 앞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요 며칠 교정 작업을 하다 보니 좀 더 정확하게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 누군가 이미 질문한 것에 아래와 같이 답이 달려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 생각이 맞았다. :)
| 괄호 뒤에 조사 및 접속사 |
| 작성자 : 최석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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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읽다보면 글을 읽다가 뚝뚝 끊기는 경우가 생깁니다.
앞에 단어와 조사나 접속사의 어울림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매일경제 2009년 3월 3일자 기사 “`세계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삼성전자 50위…1위는?”에서
“제너럴 일렉트릭(GE)와 골드만삭스”라는 구문이 나옵니다.
이 경우 “제너럴 일렉트릭(GE)과 골드만삭스”라는 표현과 위에 표현 중에 어떤 것이 맞는 지 궁금합니다.
저는 괄호를 생략해서 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위에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이 불편합니다.
제 습관을 고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며 기자들이 잘못한 것인 지 알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
|
답변 제목: 소괄호 (기타)
답변 일자: 2009.03.05.
작 성 자: 이수연 |
안녕하십니까?
원어, 연대, 주석, 설명 등을 넣을 적에 쓰는 소괄호의 쓰임이라면 소괄호 앞에 있는 말의 형태를 기준으로 하여 조사를 선택하고, 소괄호로 묶은 것이 기호 또는 기호적인 구실을 하는 문자나 단어라면 소괄호로 묶인 말의 형태를 기준으로 하여 조사를 선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문의하신 경우는 전자에 해당하는 쓰임이므로, ‘-과’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한글 맞춤법> 문장 부호, 소괄호 규정 일부를 아래에 제시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소괄호( ( ) )
(1) 원어, 연대, 주석, 설명 등을 넣을 적에 쓴다.
커피(coffee)는 기호 식품이다.
3·1 운동(1919)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무정(無情)’은 춘원(6·25 때 납북)의 작품이다.
니체(독일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2) 특히 기호 또는 기호적인 구실을 하는 문자, 단어, 구에 쓴다.
(1) 주어 (ㄱ) 명사 (라) 소리에 관한 것 |
3월 30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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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오후 뭔가 안풀리는 문제를 잡고 고민하고있던 차에 알지 못하는 핸드폰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누구님이시죠? 하는 말에 약간 어색함을 느끼고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번 진보신당 대표 및 부대표 선거에 후보로 나온 분이셨는데 투표 아직 안했으면 하라는 얘기였다. 나는 첫날 일찌감치 투표를 마쳤다고 얘기하고 그냥 끊었는데 투표율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서 누리집에 들어가 보았다. 현재까지 투표율은 생각보다는 낮은 수치여서 좀 아쉬웠다. 그리고 나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그동안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았던 칼라TV 누리집에 들어가보게 되었는데 첫 화면에 동영상이 있어서 보게 되었다. 비록 한 쪽의 눈으로만 보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무시무시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혹은 극히 왜곡된 이유로 시민을 향해 힘을 행사하는 모습이었다. 비록 다치거나 하는 장면은 없었고, 사람들을 길 위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둘러싸고 있는 장면이었지만, 이유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니 그보다 더한 것도 당연히 하게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상누각이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취약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3월 27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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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aml : Exception Backtraces
어제 밤에 ocaml로 코딩을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exception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ocaml은 프로그램이 다 끝난 다음에 exception이 발생했다고만 알려주어서 어디서 exception이 발생하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디버거도 써보고 매뉴얼도 읽어보고 했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집에 갔다가 아침에 출근해서 다른 일 하고 있었는데 자꾸 그 문제가 걸려서 진행이 안되자 다시 해결책을 찾아보았다. 매뉴얼에서 아주 약간의 힌트를 얻어 구글을 검색해봤는데 역시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고 해결책도 있었다. 야호!
저 글을 요약하자면, bytecode로 컴파일하고 OCAMLRUNPARM 환경변수를 “b1″으로 설정하면 exception이 발생했을 때 backtrace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3월 26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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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 tre volas kanti.
Mi volis kanti dum cxi tiu semajnon.
Sed, mi ne povis iri kantcxambro.
I esperas havi mia cxambro.
Do, mi povus kanti libere.
3월 15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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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서 문서를 보다가 non-convex set이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바꿔야 하나 생각하다가 도저히 답을 얻을 수 없어서 아래와 같이 국립국어원에 문의를 해보았다.
| 부정 접두어에 관하여 |
| 작성자 : 조우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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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서 부정 접두어는 무-,불-,부-,미- 등이 있는데 뒤따라 나오는 단어가 한자어가 아닌 경우 호응이 잘 맞지 않고 어색한 느낌을 줍니다.
예를 들어 “볼록 거울”이라는 말의 부정어를 만들고 싶으면 “비볼록 거울”이라고 해야 할텐데 무척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안볼록 거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안”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니”의 줄임말로 용언의 앞에서 쓰인다고 했는데 “볼록”이 용언인 것 같지도 않고 만약 용언이라면 “안 볼록 거울”처럼 띄어서 써야겠죠.
여기서 질문을 하자면, 어색하지만 “비볼록 거울”이라고 쓰는게 옳은 건지, 혹은, “안볼록 거울”이나 “안 볼록 거울”로 써도 괜찮은지, 아니면 또다른 적당한 접두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땅한 접두어가 없다면 “볼록하지 않은 거울”이라고 길게 늘여서 쓸 수 밖에 없는데 역시 썩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국어에서 일반적으로 이를 어떤식으로 다루는지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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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제목: 무-, 불-, 미-(기타)
답변 일자: 2009.03.11.
작 성 자: 고대영 |
안녕하십니까?
문의하신 접두사 ‘무-, 불-/부-, 미-’를 논리학에서의 부정(not) 의미로 포괄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체로 일부 명사 앞에서 ‘무-’는 ‘그것이 없음’을, ‘불-/부-’는 ‘아님, 아니함, 어긋남’을, ‘미-’는 ‘그것이 아직 아닌’ 또는 ‘그것이 아직 되지 않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접두사에 의한 단어 파생이 활발하기는 하나 모든 명사 앞에 붙어 새로운 단어를 파생하지는 않습니다. 문의하신 ‘볼록 거울’은 단어가 아닌 구이며, 이 표현과 관련하여 ‘평면 거울’, ‘오목 거울’ 등의 계열어를 적절히 사용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
결국 적당한 부정 접두어가 없다는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사실 나도 한국어 원어민이고 나름 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입장에서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답이 없다는 게 크게 실망할 건 아니긴 하다. 하지만 한국어의 표현력의 한계를 하나 깨닫게 되어 아쉬운 게 사실이다.
3월 11t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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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논물을 보다가 seminal이란 단어를 봤는데 대충 seminar하고 관련이 있는 단어인가보다 추측하면서 다음 사전을 찾아보았다. 근데 아래와 같이 첫 눈에는 약간 의외의 뜻이었다.
seminal [sémənl]
1 정액(精液)의, 발생의, 생식의 2 종자의, 발달 가능성이 있는
다시 생각해보니 ‘발생의’ 혹은 ‘시초가 되는’의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보기에 너무도 seminar랑 관련이 많아 보여서 the free dictionary에서 seminar의 어원을 찾아보았다.
[German, from Latin s
min
rium, seed plot; see seminary.]
흥미롭게도 ‘씨앗’이라는 뜻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 seminar는 seminary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seminary는 ‘학교’ 혹은 ‘무언가가 개발되거나 잉태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학교가 배움이 시작되는 곳이므로 저 낱말들의 관계가 드디어 머리에 떠올랐다. 이 뜻을 알고 보니 세미나 때는 꼭 새로운 걸 발표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